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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문학은 위기의 문학이다. 묵시문학 작품들은 위기로 느껴지던 시절, 박해와 억압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줌으로써 희망을 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위기는 때로 정치적, 군사적 억압이나 신학적 위기였고 때로는 특정 집단이 기존 사회에서 잘려나갈때 느끼는 고립감과 소외감이기도 했다. 몇몇 묵시록은 그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정확히 알아낼 수 없으나 많은 경우 묵시문학 작품은 특정 위기에 대한 반응과 응답으로 보인다. 실제로 위기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묵시록 저자의 눈에는 위기가 존재했을 것이다. 저자는 실제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근거해서 작품을 썼기에 위기가 실재했는지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가령 요한 묵시록의 연구자들은 1세기 후반부에 로마제국이 교회를 박해했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고심하였다. 사실 당신에 공식적인 대박해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는데도 요한 묵시록 저자는 박해와 순교, 그리고 항구한 신앙고백에 큰 관심을 보인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큰박해가 있었는가를 따질 것이아니라 저자가 그렇게 생각했느냐를 밝혀야 한다. 파트모스의 요한은 몇몇 작은 박해와 순교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근거로 제국의 박해가 현실로 느껴졌을 터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당면한 상황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했을 것이다, 곧,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세상은 사탄과 그 세력이 지배하고 사탄의 대표격인 로마제국이 모든 힘을 쥐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종말론적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사탄과 로마제국을 패배시키고 승리하실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 충실하게 머무는 이들은 새로운 하느님 나라에서 몫을 차지할 것이다. 이렇게 묵시록은 현실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희망과 위로를 전달한다. 묵시록을 접한 사람들은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께서 승리를 거두시리라 확신하면서 현 상황을 견딜 힘을 얻는다. 현재의 사회, 정치적 상황은 일시적인 것이기에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다. 하느님께서 변화를 일으키시어 의로운 이들이 보상을 받는 다른 세상을 만드실 것이기 때문이다. 묵시문학은 사회에 대한 저항의 기능도 수행한다. 사회, 정치, 군사, 신학적 반대 세력에 맞서는 이른바 저항 문학이다. 하느님께서 미리 모든 것을 결정해 두셨고 하느님께서 역사를 완성시키시리라는 믿음을 바탕에 깔고 있기에 무력과 폭력을 통한 혁명적 저항은 피한다. 지배세력의 가치관과 권위에 도전하여 순교로 맞서기도 하고 묵시록을 통해 하느님이야말로 우주와 역사를 지배하는 진정한 힘과 권위임을 보여 주면서 지배 세력과는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제시한다. 또한 묵시록은 다른 세상 혹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줌으로써 독재와 불의한 체제와 부적절한 세계관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저항하라고 촉구한다. 묵시문학적 사상은 때때로 다가올 세상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하여 현 세상의 문제와 병폐에서 눈을 돌리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사후에 대한 희망으로 현재의 삶을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묵시문학은 하느님께서 의도하시는 세상을 염원하기에 현 상황을 무조건 받아들이게 만드는 진정제가 아니라 저항과 도전을 자극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그래서 묵시문학은 기존의 질서에 위험요소가 되기도 한다. 묵시록 저자들은 악과 폭력, 억압과 불의의 세상에 맞서 소리를 높인다. 그들은 더 나은 세상, 평화와 정의의 세상에 맞서 소리를 높인다. 그들은 더 나은 세상, 평화와 정의의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공한다. 다른 한편 묵시문학은 인간의 제도가 아니라 진정한 군위이신 하느님께 눈을 돌리게 한다. 묵시문학이 염원하는 새로운 세상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의 새로운 세상이며, 새로운 창조가 실현되는 곳이다. 역사는 하느님 손에 달렸으며 인간의 노력으로는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정치 사회적 변혁을 도모하지 못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묵시문학 작품들은 여전히 저항문학으로서 현재의 사회, 역사적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촉구하기도 한다는 말은, 미래만을 바라보면서 현재의 사회,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묵시문학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묵시문학은 위로를 주기도 하고 도전을 요구함으로써 제 역할을 다한다. 이를테면 다니엘서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팔레스티나으 유다인들을 박해했던 기원전 2세기에 그들에게 희망과 저항의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아브라함의 유언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 도전하였다. 인류 공동의 적인 죽음에 직면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쿰란의 묵시문학 작품들은 당시의 대사제와 성전 예배를 반대했던 유다교 분파에게 팔레스티나으 종교, 사회적 질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였다. 요한 묵시록은 로마제국이라는 짐승에 맞서 저항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으 제공함으로써 신앙인들이 새로운 현실에 대한 희망을 유지하고 싸워나갈 의미를 선사하였다. 베드로 묵시록과 바오로 묵시록은 정경에 포함되즌 않았지만, 거기 등장하는 모티프, 이미지, 개념과 사상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와 연극에서 사용된다. 묵시사상은 지구 온난화와 그에 따른 각종 자연 대재해, 전쟁과 폭력, 물질만능과 허무주의, 우울증 등으로 종말을 예감하거나 종말을 체감하는 많은 사람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할 것인지,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을지 영감을 준다. 그리고 용기 내어 새로운 세상을 위해 도전하도록 힘을 불어 넣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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