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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행복론을 영성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 행복론이다. 산상 교훈의 장소는 아마도 가파트나움 근처 게네사르 근처 게네사르 평원의 언덕일 것으로 추정된다.

 

1.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이다. ( 마태 5장 3절 ) - 이 행복은 모든 행복의 바탕이 된다. 가난은 물리적으로 궁핍함을 말하며 가끔 부유한 자들의 희생물이 된다. 이들을 도와줄 이는 하느님뿐이라고 예언자들은 단언한다. 특히 시편에서는 가난이라는 개념을 영성화하여 자기의 부족을 느끼면서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자를 행복한 가난한 자로 인식했다. 이 뱅복한 가난한 자는 사람이나 물질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께 기대는 사람이다. 후기 예언자 참으로 아나임'('anaim)을 구제하는 하느님의 손길은 예수라는 구세주이고, 가난에 시달리는 인류는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사상으로 전환했다.  신약성서에서 이 가난한 자들의 행복이 전해져서 하느님은 그들이 지금까지 가난했던 이유를 밝히고 그들을 메시아의 왕국으로 불러들이신다.

 

2. 슬퍼하는 사람이다. ( 마태 5장 4절 ) - 첫째 행복의 대목은 이사야서 61장 1절을 반영했고 슬퍼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대목은 61장 2절을 반영한다.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61장 2절은 이야기하는 메신저의 직능 중의 하나이다. 진정한 행복은 세속에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뜻에는 슬퍼하는 사람의 행복은 첫쩨 행복과 세째 행복과 나란히 서 있다. 성서에서 슬퍼하는 사람이란 뜻은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 때문에 고통받으며 우는 것을 슬퍼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렇게 조국의 불행을 슬퍼하는 사람은 곧 메시아의 구원을 체험하며 위로를 받을 것이다.

 

3. 온유한 사람이다 - 온유한 사람은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과 같은 부류에 속한다. 이들은 콧대를 높이는 도도한 사람들이 아니다. 어떠한 사람이 온유한가에 대해서는 마태오복음서 5장 39-41절에 구체적인 예로 제시되어 있다. 이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그 땅은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으로 복구된 메시아 왕국의 땅이다.

 

4.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이다. - 마태오복음서에서 옳은 일은 자기의 뜻을 하느님의 뜻에 복종시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 것을 뜻한다. 파리사이파 유다인들은 자기네 규준에 맞추어 해석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옳은 일이라고 가르쳤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율법 규준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 마태 5장20절 ) 그것은 이기심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준행하는 일이다. "옳은 일"의 개념은 하느님이 원수들을 쳐 이기는 구약성서으 사상을 반영한다. 

 

5.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다. - 자비에 대해서는 모든 복음서에 강조되어 있다. 무자비한 종의 비유에서 형제를 용서하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용서를 받는 행복을 누릴 것이라는 교훈을 받는다 ( 마태 18장 23-35절 ) 마태오복음서에서 강조되는 자비는 온정을 베푸는 일과 용서하는 일이다.

 

6.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다. - 구약성서에서 유다인들의 깨끗함의 개념을 통하여 깨끗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의식적인 깨끗함이었다. 이렇게 깨끗함에 대해 파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와 잦은 논쟁을 벌였다. 무엇이 깨끗한 마음인가는 마태오복음서 15장 10-20절에 설명되어 있다. 특히 마음속을 드러내는 말에서 마음의 깨끗함과 더러움이 나타난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의 보상은 하느님을 뵙는 일이다. 하느님을 뵙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모신다는 뜻이다 ( 마태 18장 10절 ) 구약성서에서 왕궁의 정신들의 특권은 늘 왕을 뵙는 것이다.

 

7.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 번영을 가져다주는 사람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뜻이 아니고, 화목으 도모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화목을 도모하는 일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의무 중의 하나이다 ( 마태 5장 23-26절 ) 이러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이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개념은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인들의 특권이었다. 이제는 화목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8.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이다. - 이 행복은 이어지는 5장 11-12절에 설명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옳은 말씀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았듯이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올바로 살기를 외치다가 박해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에서 큰 상을 받을 것이니 기뻐하라고 격려하신다. 이 대목은 초기 교회가  세속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은 것을 반영한다.

 

위와 같이 주님의 행복론을 진복팔단이라고 하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9단으로 꼽기도한다. 하지만 8단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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