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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책과 후회 없이 나를 사랑하는 법  

잘함과 잘못함의 개념 너머에 들판이 있다. 그곳에서 당신을 만나겠다. 영혼이 그 잔디에 누울 때, 세계는 너무 충만해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개념, 언어, 문구는 서로 어떠한 의미도 만들지 않는다. - 루미(Rumi)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 

                                                -타라 브랙(Tara Brach)-

1. " 나는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 "

 

   스스로를 만족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결코 마음 편할 리 없다. 경계태세를 하고 자신의 결점들을 찾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결점을 발견하게 되고, 그 결과 한층 더 자신 없어지고 무가치하다고 느낀다. 결국 우리는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아이러니임을 알 수 있다.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한 수련생은 하루 종일 더 잘해야 한다는 느낌에 쫓겨 자신을 마치 대형롤러로 눌러 미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간절한 어조로 " 삶을 그저 피상적으로 살며 죽음이라는 결승선을 향해 경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나의 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가? >

  - 아플 때나 자신을 탓하는가?

  - 충분히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느끼는가?

  - 머리 모양새가 불만족스러운가?

  - 얼굴과 몸이 나이 들고 있다는 것이 당황스러운가?

  - 나 자신을 너무 뚱뚱하다거나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다고 판단하는가?

 

 <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가? >

  -  나 자신을 충분히 지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는가? 유머와 재미가 없다고 판단하는가?

  - 강박적인 사고를 한다고 나 자신을 비난하는가? 반복적이고 지루한 마음을 품었다고 나 자신을 비난하는가?

  - 나쁜 생각, 즉 천박하거나 비판적이거나 탐욕스러운 생각을 한다고 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는가?

  - 마음에 잡념이 많다고 나 자신을 열등한 명상가라고 생각하는가?

 

< 나의 정서와 기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가 ?>

    - 울어도 괜찮은가? 불안정하고 취약하다고 느껴도 괜찮은가?

    - 우울해지면 나 자신을 비난하는가?

    - 질투를 느끼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가?

    - 참을성이 없고 과민하고 편협하다고 나 자신을 비판하는가?

    - 화가 나거나 걱정을 하면 내가 영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로 느껴지는가?

 

< 행동 방식 때문에 나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느끼는가? >

  - 자기중심적이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행동할 때 나 자신을 미워하는가?

  - 분노의 폭발을 수치스러워하는가?

  - 강박적으로 먹을 때 나 자신을 역겹게 느끼는가?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너무 많이 마실 때 나 자신을 역겹게 느끼는가?

  - 이기적이고 종종 다른 사람을 우선적으로 배려하지 않기 때분에 나 자신이 영적으로 진화되지 않았다고 느끼는가?

  - 가족과 친구들과 관계하는 방식에서 항상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가?

  - 친밀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나 자신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가?

  - 충분히 성취할 수 없어서, 일에서 눈에 띄거나 특별하지 않아서, 나 자신을 싫어하는가?

 

2. 근본적 수용 :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지난 밤, 잠을 자면서 꿈을 꾸었다. 불가사의한 착각! 내 가슴 안쪽 여기에 벌통이 있었다. 그리고 황금벌들이 내 오래된 실패들로부터 흰 벌집과 달콤한 꿈을 만들고 있었다. - 안토니오 마차도

 

신기한 역설은 내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때, 내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칼 로저스-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본 것을 열린 마음과 친절함과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내가 '근본적 수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수용하고 있는 것을 명확히 볼 수 없다면 경험을 진실로 수용할 수 없다.

우리 의식의 본질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우리 가슴의 본질은 보살피는 것이다. 근본적 수용은 자신의 한계로 자신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움츠러드는 것의 변명이 아니다. 아마도 우리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직업에 맞는 자격증이나 경험을 가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 직업에 지원조차 할 수 없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과거사에 비추어,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소질이 없어서 독신으로 지내게 되리라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근본적 수용은 방종이 아니다. "나는 내가 이런 욕망이나 갈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수용한다. 고로 나는 그대로 행동할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욕구를 부정하거나 억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무엇이 우리를 추동하며 행동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의식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근본적 수용은'자기'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따금 불교를 배우는 수련생들에게 우리 자신을 수용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어떻게 이것이 무아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에 맞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자기 수용이라는 바로 그 생각은, '자기'라는 잘못된 개념을 긍정하는 것 아닌가? 붓다가 가르친 것처럼'자기'에 대한 습관적 지각은 정신적 구조물로서, 일을 발생시키고, 희생을 당하고, 쇼를 통제하는 하나의 실체에 대한 개념이다. 하지만 우리가'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고 말할 때, 선하거나 악한 자기에 관한 스토리를 수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자기'라고 해석하는 즉시적이고 정신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것들을 이런 방식으로 수용하면 경험이란 사실 비개인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어 우리 자신을 결함이 있고 제한된 자기에 동일시하는 함정에서 자유로워진다. 

 

3. 신성한 멈춤 : 지혜의 나무 아래에서의 휴식

 

  신성한 멈춤은 우리를 현재 순간과 다시 연결시킨다. 특히 우리가 분투와 집착에 빠져서 미래에 기대고 있을 때, 멈춤은 지금 여기에만 존재하는 신비와 활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4. 조건 없는 친절 : 근본적 수용의 정신

 

  인간의 삶은 여인숙이다. 매일 아침 새로운 여행자가 온다. 기쁨, 슬픔, 비열함 등 매 순간의 경험은 예기치 못한 방문자의 모습이다. 이들 모두를 환영하고 환대하라! 어두운 생각, 수치스러움, 원한..... 이들 모두를 문 앞에서 웃음으로 맞이하고 안으로 초대하라.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감사하라. 이들은 모두 영원으로부터 온 안내자들이다.  - 루미 (Rumi)-

 

근본적 수용을 훈련할 때, 우리는 일단 멈춰서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 무엇이든 이 같은 조건 없는 친절로 마주한다. 질투나 분노를 적으로 만드는 대신에, 어떤 경험이든 그것을 알아차리고 친절하게 보살피는 방식으로 주의를 기울인다. 무엇도 잘못된 것은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단지'진짜 삶'일 따름이다. 이 같은 조건 없는 친절이 근본적 수용의 정신이다. 삶을 바라보는 고정된 생각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삶에 자유롭게 온 마음을 다해'예스'를 말하게 된다.

 

5. 몸과 가까워지기 : 근본적 수용의 기반

 

  배우고 규칙적으로 훈련할 때 깊은 영적 목적, 평화, 마음챙김과 명확한 이해, 예지력과 지식,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한 삶, 최고의 지혜와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한 가지가 있다. 그 한 가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몸에 집중하는 마음 챙김이다. - 붓다.(사념처경) 가운데서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 하든 우리 몸을 통해 삶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개 세상에 관한 자신의 생각에 마음을 빼앗겨서 직접적인 감각 경험의 많은 부분을 놓친다. 심지어 강한 바람, 지붕위의 빗소리, 공기 중의 향기를 느낄 때조차 그것을 온전히 알아차릴 만큼 충분히 길게 경험을 유지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순간에 우리는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판단하고 다음에 할 일을 계획하는 내면의 대화에 매몰되어 있다. 친구들 반갑게 포옹하지만, 얼마나 오래 껴안고 있어야 할지 혹은 포옹을 끝낸 다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등을 계산하느라 포옹의 신체적 접촉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고 서둘러 포옹을 해치워버린다.

진심으로 자신을 탐구하라. 당신은 여기 있는가, 없는가? 당신은 당신 몸에 존재하는가, 의식하지 못하는가, 아니면 일부분만을 의식하는가? 내가"당신은 당신 몸에 존재하는가?"라고 할 때의 의미는 '당신은 당신 몸을 완전히 채우고 있는가?이다.나는 당신이 당신 발에 존재하는지, 아니면 단지 발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

 

6.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을때 인간은 자유롭지 않다. 인간은 오직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만 자유롭다. 그리고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자기에 도달하는 길이 있다! 그것은 뛰어드는 것이다. -로렌스)D.H. Lawrence)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를 간절히 원하는 것부터 순례자가 진리를 찾는 것까지, 모든 움직임은 움직이는 자로부터 나온다. 모든 갈망은 우리를 바다로 끌어들인다.  - 루미(Rumi)-

 

7. 두려움과 함께 사는 법

 

  우리는 도망치고 있는 고통을 직면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그 고통에 머무는 방법을 배워서, 그 타는 듯한 힘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잇게 해야 한다. - 살롯 조코 벡-

 

두려움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두려움은 밤에 잠을 깨우고 잘 수 없게 위협한다. 두려움은 위장에서의 초조한 느낌, 가슴 주변에서의 쓰림과 압박감, 목이 졸리는 긴장감이다. 두려움은 심장의 야단스러운 쿵쾅거림, 맥박의 질주다. 두려움은 호흡을 위축시켜서 얕고 빠르게 한다. 두려움은 우리가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려주고, 일어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신속하게 파악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두려움은 뭔가 잘못될 거라는 스토리에 우리의 마음을 넘겨준다. 두려움은 우리가 우리 몸을 잃을 것이고, 우리 마음을 잃을 것이며, 친구, 가족, 세상 자체를 잃을 것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은 미래의 고통에 대한 예측이다.

 

8. 나를 자비로 감싸 안기 : "내가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당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이미 당신 안에 있다. 당신은 단지 존경과 사랑으로 자신에게 다가가야 한다. 자기비난과 자기 불신은 빼아픈 실수다. ------당신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당신 자신에 대한 사랑을 완전하게 만들라. - 스리 니사르가다타-

당신의 욕구는 신이 창조한 어린아이다. 어린아이는 울 것이고 그러면 젖이 나올 것이다. 울어라! 당신의 고통에 둔감하거나 침묵하지 마라. 슬퍼하라! 그래서 당신 안으로 사랑의 젖이 흐르게 하라. -루미(Rumi)-

 

자비는 자신의 삶을 사랑의 마음으로 감싸 안는 능력에서 시작한다. 괴로움을 느낄 때마다 주의 , 말, 손길을 통해 자신을 보살피면 자연스럽게 자비심이 깨어날 것이다. 자비는 우리 본성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꽃피게 된다.

 

9. 세상을 자비로 감싸 안기 : "나의 삶이 모든 존재에게 이롭기를"

 

  나는 원들을 넓히며 인생을 산다. 그 원은 세상 속에서 넓게넓게 퍼져나간다. 나는 마지만 원을 아마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일에 내 인생을 던졌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우리가 연결성과 친절을 느끼는 순간 주변 사람들이 편안하게 마음을 열도록 고무하는 따뜻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미소, 포옹, 경청, 기도로 자비의 원을 넓힐 때마다 잔물결이 끝없이 퍼져 나간다.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줄 때 우리의 친절은 세상을 통해 퍼져 나간다.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든 나메게 주어지든 상관없이, 보살의 자비는 편견 없이 모든 생명을 어루만져 주는 보슬비다.

 

10. 우리안의 선함 깨닫기 : 용서와 사랑의 마음으로 가는 관문

 

  하나밖에 없는 자식의 삶을 보살피고 인도해주는 자비로운 어머니처럼 한없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과 모든 존재를 감싸 안으라. -붓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훌륭하다. 내가 그토록 선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월트 휘트먼-

 

자신의 선함을 돌아보는 일은 불교 수행에서 좋은 방편이다. 왜냐하면 그 행위가 우리의 가슴을 열어주고, 영적 수행 과정에서 신념을 고무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나쁘다는 생각에 붙잡혀 있다면 스스로 위축되고 숨게 된다. 반면에 선함을 믿는다면 우리는 타인에게 문을 열고 그들을 돕고 싶은 열의 를 느끼며, 기쁨에 차서 영적인 길을 향해 헌신적으로 나아가게 된다. 선함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추천하는 몇 가지 전통 수행법이 있다. 우선 우리 자신에게 감사할 만한 자질이나 행동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친절했던 사례를 기억할 때, 배려와 관대함의 온기를 맛볼 수 있다. 내 의견을 접어두고 누군가의 말을 깊이 경청했던 때나 친구가 좋아할 만한 책을 친구에게 그냥줬던 때를 기억할 수 있다. 모차르트 음악을 듣고 감동하거나 별이 총총한 밤하늘에 외경심을 느낄 때, 나는 인생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때론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보는 것이 자신의 진면목을 가장 쉽게 알아내는 방법일 때도 있다.

 

11. 함께 깨어나기 : 깨어있는 우정은 신성한 삶의 전부다

 

  친구들이여, 함께 머물라. 흩어져서 잠들지 마라. 우리의 우정은 깨어있음으로 맺어진다. -루미-

 

나는 나의 신을 찾았다. 내가 볼 수 없었던 나의 신. 나는 내 영혼을 찾았다. 나를 빠져나갔던 나의 영혼. 나는 내 형제를 찾았다. 그리고 세 가지 모두를 발견했다. -작자 미상-

 

불교는 전통적으로 인간관계와 사회적 맥락을 중시해왔지만, 서양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개인의 명상 수행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이러한 면들을 도외시한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의식의 도구를 갈고닦을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을 찾아가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주의를 집중하며 명료한 상태가 되는 방법을 배운다. 고독한 시간이 영적 훈련에 꼭 필요하고 소중한 요소이긴 하지만, 묵언 명상과 내면의 삶에 초점을 두는 가르침은 외로운 길 위에 있고, 우리의 영적 목표는 오로지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그릇된 주장을 강화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말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며, 받아들이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붓다는 현명한 말, 즉 삶을 존중하는 말이란 진실한 것과 이로운 것만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욕구와 두려움에 매몰되어 서로에게 습관적으로 반응한다. 서로 함께 깨어있게 하는 훈련은 마음챙김과 자비를 일상생활에 통합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솔직하고 친절하게 의사소통하는 순간, 분리의 트렌스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욕구나 두려움에 이끌려 움직이는 대신, 점점 더 자연스럽게 실재함을 느낀다. 서로 깨어있으면서 관계 맺는 이 훈련들을 통해, 우리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유대감이 주는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12. 나는 누구인가?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어떤 것에든 매달린다면 의식의 완전한 자유가 어려워진다. 관찰자라는 느낌에 매달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때는 내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했던 것처럼, '누가 의식하는가?'라고 질문하여 희미한'나'라는 느낌에 드리운 커튼을 걷어낼 수 있다. '무엇이 의식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누가 생각하고 있는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의식 자체를 마음챙김한다. 우리는 의식을 바라본다. 질문하기와 의식 바라보기를 통해 우리를 분리하고 속박했던 뿌리 깊은 '나'라는 환상을 뜷고 나가 떨쳐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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